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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09 12:34
다른 아이와 여러분의 아이를 비교하지 마시오.
 글쓴이 : 말스피치
조회 : 3,040  
- 세 살 난 뇌성마비 아들을 둔 한 엄마가 쓴 글 -
 우리 아들은 태어나면서 뇌에 손상을 입었다. 의사는 아이가 뇌성마비에 정신지체를 보일 가능성이 있고 걷지도 말하지도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과 중환자실에서 2주 동안 있다가, 아이가 집에 왔다. 그때부터 나는 줄곧 아이에게 뭔가 잘못된 증후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예의 주시했다. 매번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이가 이런데 "정상이 아닌 것이 아닐까요?"라고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때부터 나는 엠과 다른 아기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지. 식당에서 본 아기는 딸랑이를 쥐고 흔들었는데. 어쩌나, 시장에서 본 아기는 귀엽게 옹알이도 하던데, 우리 아기는 못 하네. 이 일을 어쩌나, 공원에서 본 아기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으로 가리키던데 우리 아들은 못 하잖아. 다른 아기들만 보면 이런 식의 비교가 자동적으로 되었다. 가차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중략)
 엄마들 사이에서 아기 얘기를 하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회사 직원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아들이 이제 걸어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사람이었다. 그 질문이 얼마나 내 억장을 무너뜨리는 질문인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나는 최대한 평정을 지키면서, 밝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뇨, 아직은요."
 돌잔치에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어디를 가나 돌쟁이 아이들이 득실거리는데, 하나하나가 사례 연구의 대상이요, 우리 아들의 비교 대상이었다. 이런 돌잔치가 줄줄이 계속될 때는 진짜 악몽이었다. 12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 아이는 앉아 있기도 힘이 들었고, 자기 혼자 먹거나 우유병을 잡는 것은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소리도 내지 못했다. 돌잔치에 가면 나는 방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들을 꼭 안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장아장 걷고, 잽싸게 기어가고, 옹알이를 하고, 과자를 그 작은 입 속으로 마구 넣는 모습들을 지켜보기에 바빴다. 돌잔치에 가면 매번 세상을 탓하면서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며 자리를 떴다.
 아들을 보통의 아이와 비교하는 것이 나에 대한 고문이었다면, 물리 치료 센터에서 만나는 장애를 가진 다른 아이들과 아이를 비교하는 것도 또 다른 고문이었다. 센터 홀에서 휠체어를 자기 손으로 밀고 가는 10대 아이처럼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지는 않을까? 우리 다음으로 치료를 기다리는 저 소녀처럼 아들도 끊임없이 침을 흘리게 되지나 않을까? 다른 사람이 아이를 부르는데도 이름을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하지? 내 속에서 일어나는 비교는 점점 상식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중략)
 나도 안다. 사실,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취해내고 있었다. 아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걱정만이 심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들에게 결코 도움이 안되었다. 여기에 다른 아이들을 관찰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너무 많이 써서, 정작 아이가 가진 것들을 기뻐할 여력이 없었다. 아이의 싱긋 웃는 표정.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는 아이의 태도. 아이가 좋아하는 <버스에 달린 바퀴>란 책을 읽어줄 때 열중하는 모습. 까꿍 놀이를 하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결국 아이에 대해 사랑할 것들을 잃어버릴 뿐인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우리 아들은 만 세 살이 되었다. 아이는 어느 때보다 잘 웃는다. 이제는 소리도 좀 내고, 수화도 몇 개 할 줄 안다. 아이에게 "바깥에서 놀래, 아니면 집 안에서 책 볼래?" 하고 물어보면 아이는 우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이해한다. 그리고 자기 여동생한테 뽀뽀해주는 걸 정말 좋아한다. 뇌성마비인데도 이젠 잘 걷는다.
 나는 여전히 생일 파티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할 수 있게 돕는다든지, 아이 입에 음식을 넣어준다든지 하는 행동에 집중하면서 의도적으로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들과 다른 아이를 비교할 때가 있다. 아이가 다니는 특수학교에 있으면, 나는 내가 새로운 시각으로 비교를 하게 되었음을 느낀다. 우리 아들이 보조기 없이 걸을 수 있구나. 다른 아이들은 보조기를 달아야 하는데. 우리 아들은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데, 다른 아이는 못하는구나. 물론 고약한 심보에서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고 성취했는지에 대해 경이로워하는 것뿐이다. 결국 우리 아들이 이뤄낸 것을 축하하는 것만큼 내게 좋은 약은 없다. 아들의 작은 체구를 안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은, 내가 원하는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바로 그 아이에게 내 마음을 쏟게 만든다.
출처 : 데니스 브로디/장애아 부모들의 색다른 행복 찾기 '놀이방의 코끼리'/크림슨(2008)
 
 
http://www.malspeech.com/